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의 변증법 (문단 편집) === 성과 문화의 미래: [[변증법]]의 채택 === 본서가 다른 유사한 책들과는 달리 "미래에는 우리는 이 길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접근 방법론으로서 '''역사적 유물론의 [[변증법]]적 관점'''을 채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역사적 유물론을 "성의 변증법 안에서 모든 역사적 사건의 궁극적 원인과 가장 큰 원동력을 찾는 역사의 과정을 보는 방식"(p.27)이라고 정의하고, 세계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의 대립적 작용 및 반작용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가 통찰력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부분적 현실일 뿐이라고 여기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성차별|기존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것]]을 설명해 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성별 계급(sex class), 즉 '''남녀 간의 계급투쟁'''의 문제를 꺼내든다. 분석에 있어서 생산수단(the means of production)뿐만 아니라 생식수단(the means of reproduction)까지도 고려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남녀 간의 노동분업이 계급 간의 노동분업보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종속적인 계급으로 밀려나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남녀는 아예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는 성별분화(sexual division)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논지는 거의 [[오컴의 면도날]]을 연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제2의 성]]" 의 지위로 밀려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도입했지만, 그 결과 쓸데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 되고 말았다. 저자 왈, 그 이유는 보부아르가 [[아는 게 병|철학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많아서라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성별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파악했지만 성적 억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놓침으로써 자꾸 에로스니 타나토스니 하는 불필요한 선험적 논리들을 [[애드혹]]으로 덧붙여야 했다. 그러나 계급적 억압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간명하고 명쾌하며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애초에 양성의 신체 자체가 서로 다르잖아? 그럼 여기서 [[성차별]]이 시작됐다고 보는 게 가장 깔끔하지 않음?"'''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남녀가 서로 다른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가부장제가 생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가부장제가 제 아무리 "타고 태어나는 몸" 에 근거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힘은 자연의 한계를 충분히 넘어서서 "합"'''(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 물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여성들 본인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게 파이어스톤의 요청이다. 이렇게 본다면 페미니즘이 임하는 성별 계급투쟁의 전쟁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적 계급투쟁의 전쟁터와 닮은 것이 꽤나 많다. 마르크스주의가 경제계급의 철폐를 위해 노동자들의 봉기에 더하여 생산수단점유를 제시하듯이, 저자도 성별계급의 철폐를 위해 '''여성들의 봉기'''에 더하여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하는) '''생식수단점유'''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주의 혁명의 최종목표로서 [[부르주아|계급특권]] 철폐 외에도 [[공산주의|계급구분 철폐]]를 제시하듯이, 페미니즘 혁명도 그 최종목표로서 '''[[가부장제|성별특권]] 철폐'''와 함께 '''[[래디컬 페미니즘|성별구분 철폐]]'''의 이상을 제시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구분이 의미 없는 사회를 꿈꾸듯이, 페미니스트들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의미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저자는 빈부격차를 계급적 관계로 설명하는 것에 빗대어 성차별 역시 계급적 관계로서 설명한 뒤, (그리고 성차별은 생물학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훨씬 뿌리깊은 것이라고 주장한 뒤) 본서의 한참 뒤편에서 이번에는 [[문화]]의 발전 역시 변증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저자는 '''문화의 발전양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과]]와 [[이과]]를 두 대립항으로 선정한다.''' 더욱 흥미로운 (어쩌면 기막힌) 것은, 저자는 내친김에 아예 '''[[문과]]=[[여성]], [[이과]]=[[남성]]'''의 등식까지 세웠다는 것. 우선 저자가 문화사를 고찰하기 위해 정의한 바에 따르면, 문화란 "생각할 수 있는 것(the conceivable)을 가능한 것(the possible)으로 실현하려는 인간의 시도"(p.249)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 즉 '''의식하고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예술성 내지는 [[문과]]적인 측면을 의미하며, 현실화가 당장은 불가능할지라도 상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날아다닐 수 없지만, [[아라비안 나이트|비행 양탄자는 문학작품 속에 그려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상을 현실화하는 수단 중 하나가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이과]]적인 측면, 즉 "[[기술|테크놀로지]]" 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비행 양탄자라는 상상의 산물은 비행기를 설계하는 공학자들을 통하여 이미 현실화되었다.] 이처럼, 관념과 현실 사이에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개 전자가 후자를 앞질러 간다. 그리고 '''후자(현실)로 하여금 전자(관념)를 따라잡게 만들려는 힘이 바로 문화다.''' '''관념으로서의 문화적 반응'''이 시, 그림, 철학, 신학, 음악 등을 통해 현실로부터 가상의 이상세계로 넘어가는 미학을 추구하고, '''과학으로서의 문화적 반응'''이 그 현실의 작용을 지배하여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추구한다면, [[VS놀이|그 중 어떤 하나가 무조건 더 낫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인가?]]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두 문화적 반응들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남녀가 범주적으로 분리되고 여성들이 억압 받듯이, 인간 문화에서도 문과적인 측면과 이과적인 측면이 범주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인문학]]의 위기" 가 찾아왔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인문학의 [[리즈시절]]을 [[르네상스]] 시기로 꼽으며, 이때는 여성적 문화의 정점이자 황금시대이며 사실상 "문명의 모권적 단계"(p.258)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근대 이후로는 예술과 인문의 가치가 급격히 감소했고, 오늘날에는 더 이상 대중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며, 진입장벽을 쌓고 있고,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며, 아는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고, 그 속에서만 비평권력을 휘두르는 신세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편견 및 고정관념/예술|예술가들은 괴짜 취급을 받고, 광기나 자살의 이미지가 심겨졌으며, 골방에서만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통념]]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남성들이 가부장적 특권을 누리듯이, 현대의 과학기술은 길어봤자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어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밀러-유리 유기물 합성 실험을 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경험주의]]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더 빠르고 더 효과적인 수단"(p.261)이라고 극찬하는데, 이는 반(反)실증주의적이고 [[과학적 방법]]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현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과는 상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자는 "다음 문화적 혁명에서 우리가 가질 것은 남성(테크놀로지 양식)과 여성(미학 양식)의 재통합"(p.276)이라고 말하면서 '''이 둘을 합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상기했듯이, [[남성혐오|특권집단을 "때려잡자" 거나 특권을 "빼앗아오자" 가 아닌]], 양쪽을 서로 합쳐서 특권적 구조를 없애버리자는 주장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저자는 문화를 "인간의 시도" 로 정의하였으므로, 둘을 합치자는 것은 곧 모든 '''생각하는 것을 별도의 노력 없이 완벽하게 실현으로 옮길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에 해당한다. 즉, 이상세계에서는 여성적인 측면(문과)이 상상한 것을 남성적인 측면(이과)이 실현함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문화라는 대리물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게 된다. 문화가 소멸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자아가 본능을 통제하고 지연시킬 필요 없이, 존재 자체, 행동 자체, 경험 자체로부터 본능적 만족과 기쁨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보다시피 파이어스톤이 말하는 기술이 상상을 따라잡는 사회, 혹은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도 기술이 그 날아오르는 상상을 앞질러가는 사회" 는 (물론 서로 같지는 않지만) 현대의 일부 지식인들이 설파하는 소위 [[기술적 특이점]]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덜 거창하게(?) 저자의 생각을 다시 풀어본다면, 문화의 여성적 측면과 남성적 측면을 융합시킨다는 말은, 곧 인문계와 여성적 측면이 연결되지 않고 이공계와 남성적 측면 역시 연결되지 않게 한다는 정도의 의미도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흔히 권위적이고 둔감하며 위압적인 등 남성적으로 형용되고, [[예술가]]들은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며 편집증적인 등 여성적으로 형용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예술적인 과학자들' 과 '과학적인 예술가' 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저자의 요점은 무턱대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찬양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예술과 과학기술이 서로 구분될 수 없는 형태로서 발전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